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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상군(孟嘗君)

다이달로스 2010. 3. 20. 04:25

 

 

 맹상군 (孟嘗君 ?∼BC 279?)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공족(公族). 성은전(田), 이름은 문(文).

정곽군(靖郭君) 전영의 아들로서, 부친의 영지를 이어받고 

문하(門下)에 식객 수천명을 거느렸으며,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과 함께

전국사군(戰國四君)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진(秦)나라의 소왕(昭王)은 그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소식을 듣고,

BC 299년 그를 재상(宰相)으로 삼기 위해 진나라로 불러들이고,

이어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식객의 활약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히 제나라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유명한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故事)이다.

뒤에 이르러서 그는 제나라뿐만 아니라 위나라 재상에도 임명되었으나,

BC 284년 이후로는 자립하여 제후(諸侯)가 되었고, 설(薛)에서 사망하었다.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사마천사기(史馬遷史記)

 

孟嘗君은 名文이요 姓田氏라 文之父曰靖郭君田嬰이니 田嬰者는 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맹상군은 이름이 문이요 성은 전씨이다.

문의 아버지는 정곽군 전영이니 전영은 제위왕의 작은 아들이고 제선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田嬰自威王時로 任職用事하야 與成侯鄒忌及田忌로 將而救韓伐魏할새

成侯與田忌爭寵하야 成侯賣田忌하야대 田忌懼하야 襲齊之邊邑이라가 不勝亡走이러니,

 

전영은 위왕때 부터 벼슬을 하면서 일을 하였는데 성후 추기와 전기와 더불어 

군사를 거느리고 한나라를 구하고 위나라를 토벌할 적에

성후가 전기가 총애를 다투다가 성후가 전기를 모함하니 전기가 두려워

제나라의 변방 고을을 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자 도망갔다.

 

* 將: 군사를 거느리다.

* 賣(매); 팔다. 속이다.배신하다.


 

會威王卒하고 宣王立하야 知成侯賣田忌하고, 乃復召田忌以爲將하니,

宣王二年에 田忌與孫臏田嬰으로 俱伐魏하야 敗之馬陵하고 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하니라.

 

마침 위왕이 죽고 선왕이 즉위하여 성후가 전기를 모함한 것을 알고

곧 전기를 다시 불러 장군으로 삼고 선왕 2년에 전기가 손빈 전영과 더불어

함께 위를 쳐서 마릉에서 패퇴시키고 위 태자 신을 사로 잡고 위 장수 방연을 죽였다.

 

* 會: 마침

 

 

宣王七年에 田嬰使於韓魏하야대 韓魏服於齊이어늘 田嬰與韓昭侯魏惠王으로

會齊宣王東阿南하야 盟而去하고, 明年에 復與梁惠王會甄이러니 是歲에 梁惠王卒하다.

 

선왕7년 전영이 한,위에 사신으로 갔는데 한,위가 제나라에 복종하였고

전영이 한소후와 위혜왕과 더불어  동하 남쪽에서 제선왕을 만나서 맹약하고 헤어졌는데

다음해 다시 양헤왕과 더불어 견에서 만났는데 이해에 양혜왕이 죽었다.


 

宣王九年에 田嬰相齊하야 齊宣王與魏襄王으로 會徐州而相王也하니 楚威王聞之하고

怒田嬰하야 明年에 楚伐敗齊師於徐州하고, 而使人逐田嬰하야대, 田嬰使張丑로 說楚威王하니 威王乃止하다.

 

선왕 9년 전영이 제나라에서 재상이 되고 제선왕과 위혜왕이 서주에서 만나 서로 왕이라고 칭하기로 하였다.

초위왕이 이를 듣고 전영을 크게 노여워하였다. 다음해 초나라가 서주에서 제나라 군사를 쳐서 패배시키고,

사람을 시켜 전영을 쫒아내려하니 전영은 장축을 시켜 초위왕에게 유세케하니 위왕이 곧 중지하였다.


 

田嬰相齊十一年에, 宣王卒하고, 湣王卽位하야 卽位三年에 而封田嬰於薛하니라.

 

전영이 제나라에서 재상한지 11년 만에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하였는데 즉위 3년에 전영을 설땅에 봉하였다.


 

初에 田嬰有子 四十餘人이요 其賤妾에 有子하니 名文이라 文以五月五日生이어늘

嬰告其母曰勿擧也하라 其母竊擧生之러니, 及長에 其母因兄弟而見其子文於田嬰하야대,

 

처음에 전영은 아들이 40여명 있었는데 그의 천한 첩에 아들이 있었는데 이르이 문이였다.

문이 5월5일에 태어났는데  전영이 그 어미에게 이르길 "그 아들을 키우지 말라"하니 그 어미가 몰래 그를 키웠다.

나중에 장성하니 그어미가 형제를 통하여 그 아들을 전영에게 알현케 하니


 

田嬰怒其母曰吾令若去此子어늘 而敢生之는 何也오 文頓首因曰君所以不擧五月子者는 何故요

嬰曰五月子者는 長與戶齊면 將不利其父母이니라.

 

전영이 그 어미에게 노하여 말하길

"내가 너에게 그 아들를 버리라 명하였는데 감히 그를 키웠으니 어찌 된 까닭인가?"하였다.

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길

"군께서 5월에 태어난 자식을 키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전영이 말하길

"5월에 태어난 자식은  자라서 문과 가지런 하게 되면 장차 그 부모를 불리하게 한다"하니


 

文曰人生이 受命於天乎아 將受命於戶邪아 嬰黙然이어늘 文曰必受命於天한데 君何憂焉이며,

必受命於戶면 則高其戶耳라 誰能至者이리오.

 

문이 말하길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에서 명을 받는 것입니까? 장차 문에서 받는 것입니까"하니

전영이 대꾸하지 못하고 있으니

문이 말하길

"반드시 하늘로 부터 명을 받는 것이라면 군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이며

필히 문으로 부터 명을 받는 것이라면 그 문을 더 높이면 될 뿐이니 누가 능히 그문에 이르리있가?하였다.

 

 

嬰曰子休矣라 久之文承間하야 問其父嬰曰子之子爲何오 曰爲孫이니라 孫之孫爲何오 曰爲玄孫이니라

玄孫之孫爲何오 曰不能知也이니라.

 

전영이 그대는 그만하라 하였다. 잠시 있다 문이 틈을 보아 그 아비 전영에게 말하길

"아들의 아들은 무엇이옵니까?"

"손자니라"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 합니까?"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라 합니까?"

"그건 알 수 없다"


 

文曰君用事相齊至今三王矣로대 齊不加廣하고 而君私家 富累萬金이로 門下에 不見一賢者하니

文聞將門에 必有將이오 相門에 必有相이라하니,

 

문이 말하길

"군께서 일을 맡아 제나라에서 재상하신지 지금 까지 3명의 왕을 모셨는데 제나라가 더욱 넓어지지 않았는데 군의 사가는 부가 만금이 쌓였으니 문하에 현자 한명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에 장수 집안에는 필히 장수가 나고 재상 집안에는 반드시 재상이 난다고 합니다.

 

 

今君後宮蹈綺而士不得裋褐하며 僕妾餘梁肉而士不厭糟糠이어늘

今君又尙厚積餘藏하야 欲以遺所不知何人하고 而忘公家之事日損하니 文 竊怪之하노이다.

 

지금 군의 후궁들은 비단을 밟고 있으나, 선비들은 거친 옷도 입지 못하며

종과 첩들은 곡식과 고기를 남기지만 선비들은 술지게미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 군께서 또 오히려 재물을 쌓아 보관하여 누구인지 모르는 이에게 남기고자 하니

공가(나라)의 일은 날로 덜어지고 (잘못되는 것)있는 것을 잊고 계시니 문이 삼가 괴이하게 생각하옵니다" 하였다 

 

* 綺(기): 비단

* (곡): 비단 

* 裋褐(수갈): 종들이 입는 거친 옷  (裋: 헤진 옷 수  褐: 베옷)


 

於是에 嬰乃禮文하고 使主家待賓客하니 賓客日進하야

名聲聞於諸侯하야대 諸侯皆使人으로 請薛公田嬰하야 以文爲太子하니, 嬰許之러니,

 

이에 전영이 곧 문에게 예우하여 집안을 주관하고 빈객들을 접대하도록 하니

빈객들이 날로 늘어나 명성이 제후들에게도 들리니

제후들이 모두 사람을 보내 채공 전영에게  문을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하니 전영이 허락하였다.


 

嬰卒에 諡爲靖郭君하고, 而文果代立於薛하니, 是爲孟嘗君이라.

孟嘗君在薛하야 招致諸侯賓客及亡人有罪者하야 皆歸孟嘗君하니,

 

전영이죽어 시호가 정곽군이 되고 문이 과연 설땅에서 자리를 이으니 이 사람이 맹상군이다.

맹상군이 설땅에 잇을 때 제후,빈객과 죄가 있어 도망친 자들을 초치하니 모두 맹상군에게 모여들으니


 

孟嘗君舍業하고 厚遇之하야 以故傾天下之士하니 食客數千人에 無貴賤一如文等이러라.

 

맹상군이 재산을 털어 후대하였다. 그리하여 천하의 선비들이 몰려 식객이 수천명인데

귀천없이 한결 같이 문과 대등하게 하였다. 

 

* 舍業(사업) 1) 객사를 짓다  2) 업을 버리다(捨). 즉 가업을 털다.


孟嘗君待客坐語而屛風後에 常有侍史하여 主記君所與客語問親戚居處이러니

客去에 孟嘗君已使使存問하고 獻遺其親戚이러라

 

맹상군이 손님을 접대하고 앉아서 말할 적에 병풍 뒤에는

항시 시사(보좌하는 이)를 두어 맹상군이 객에게 묻는 친척, 거처 묻는 것을 기록을 맡게 했다.

객이 떠나면 맹상군이 사람을 보내 집안 형편을 살피게 한후에 그 친척들에게 선물을 보내 주었다.

 

* 存問(존문): 문안 드리다. 형편을 알기 위하여 가서 살핌


 

孟嘗君曾待客夜食이러니 有一人蔽火光이어늘 客怒以飯不等으로 輟食辭去하야대,

孟嘗君起하야 自持其飯比之하니 客慙하야 自剄이라.

士以此로 多歸孟嘗君하니 孟嘗君客無所擇하고 皆善遇之하야대 人人各自以爲孟嘗君親已라하더라.

 

맹상군이 일찌기 객을 접대하여 밤에 식사를 하는데 어떤이가 불빛을 가리니

객이 식사가 평등하지 못하다고 노하여 밥 먹기를 그만 두고 떠나려 하자

맹상군이 일어나 스스로 그 밥상을 가져와 비교하니 객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 찔러 죽었다.

선비들이 이일로 더욱 맹상군에게 귀의하니 맹상군은 객을 가리는 바 없이

모두 잘 대우하여 주니 사람 마다 각각  맹상군을 자기와 친하다고 여겼다.


 

秦昭王聞其賢하고 乃先使涇陽君爲質於齊하고 以求見孟嘗君하야대

孟嘗君將入秦이어늘 賓客莫欲其行하야 諫不聽이라.

 

진소왕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곧 먼저 제나라에 경양군을 인질로 보내고

맹상군 보기를 청하였는데,

맹상군이 장차 진나라에 들어가고자 하거늘 빈객들 중에

그 행차를 바라는 자가 없어서 (못하게)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蘇代謂曰 今旦에 代從外來할새 見木偶人與土偶人으로 相與語러니 木偶人曰 天雨하니 子將敗矣로다.

 

소대가 이르길

"오늘 아침 제가 밖에서 오다가 목인형과 흙인형이 서로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목인형이 "비가 오니 그대는 장차 낭패로구나" 하니

* 소대: 소진 동생


 

土偶人曰我는 生於土하야 敗則歸土어니도 今天雨이면 流子而行하야 未知所止息也라하니

今秦은 虎狼之國也어니 而君欲往하니 如有不得還이면 君得無爲土偶人所笑乎아.

 

흙인형이 대답하길

"나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오늘 비가 오면 그대를 떠내러 가 어디에 닿을 지 모른다" 하니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 같은 나라인데 군께서 가고자 하니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군께서는 흙인형에게 비웃움 당하는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孟嘗君乃止러니 齊湣王二十五年에 復卒使孟嘗君으로 入秦하야대 昭王卽以孟嘗君으로 爲秦相하니

人或說秦昭王曰 孟嘗君은 賢而又齊族也라 今相秦에 必先齊而後秦이니 秦其危矣리이다.

 

맹상군이 곧 중지하였는데, 제민왕 25년에 다시 마침내 맹상군으로 진나라로 들어 오게하였다.

(그리하여) 소왕이  맹상군을 진나라 재상으로 삼으니 혹자들이 진소왕에게 말하길 

"맹상군은 현명하고 또 제나라의 족속이라.

지금 진나라에서 재상을 지내고 있으니 반드시 먼제 제나라를 (생각)하고 후에 진나라를 (생각)할 것이니

진나라가 위태로울 것 입니다"하였다.


 

於是에 秦昭王乃止囚孟嘗君하야 謀欲殺之어늘 孟嘗君使人으로

抵昭王幸姬하야 求解하야대, 幸姬曰妾願得君狐白裘하노라,

 

이에 진소앙이 곧 중지하고 맹상군을 가두어서 그를 죽이려고 하니

맹상군이 사람을 시켜 소왕이 총애받는 여자에게 이르게하여(만나서) 

풀어줄 것을 구하였는데 총애 받는 여인이 말하길

"첩은 군이 가지고 있는 하얀 여우 가죽옷을 원한다" 하였다.

 

*抵(지): 막다. 이르다



此時에 孟嘗君有一狐白裘러니 直千金이라 天下無雙일새 入秦하야 獻之昭王하니

更無他裘라 孟嘗君患之하야 徧問客호대, 莫能對어니,

 

이때 맹상군이 하얀 여우 가죽옷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치가 천금이라

천하에 하나 밖에 없었는데 진나라에 들어와 소왕에게 헌납하여 다른 여우가죽옷이 없었다.

맹상군이 이를 걱정하여 두루 객들에게 물으니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는데


 

最下坐에 有能爲狗盜者曰臣能得狐白裘하리라 乃夜爲狗하야 以入秦宮藏中하야

取所獻狐白裘至하야 以獻秦王幸姬하야대, 幸姬爲言昭王하니 昭王釋孟嘗君이어늘,

 

가장 아래쪽에 앉아 있던 개처럼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말하길

 "신이 능히 하얀 여우 가죽옷을 가져오겠습니다"

하고 밤에 개가 되어(개 흉내를 내어) 나라 궁창고 안에  들어가

헌납하였던 하얀 여우 가죽옷을 가져와서 진왕이 총애하는 여자에게 받쳐,

그 여인이 (맹상군을)위하여 소왕에 말하여 소왕이 맹상군을 석방하거늘


 

 

孟嘗君得出하야 卽馳去할새 更(경)封傳하고 變名姓하야 以出關하야 夜半至函谷關하니

秦昭王後悔出孟嘗君하야 求之하니 已去라,

 

맹상군이 탈출할 수 있어 말을 달려 가는데 곧 봉전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어서

관문을 나가려 한밤중에 함곡관에 도착하니,

진소왕이 맹상군이 탈출할 것을 후회하여 찾으니 이미 떠나고 없는지라

 

* 封傳(봉전): 통행증

 

 

 

卽使人馳傳逐之하니 孟嘗君至關이라 關法에 鷄鳴而出客이라 孟嘗君恐追至러니

客之居下坐者有能爲鷄鳴일새 而鷄盡鳴이어늘 遂發傳出하야

出如食頃에 秦追果至關하야난 已後孟嘗君出하야 乃還하다.

 

곧 사람을 시켜 말을 타고 뒤쫒게하였는데 맹상군이 함곡관에 이르렀다.

함곡관 법에는 닭이 울어야 사람을 내보내는데

맹상군이 추격하는 자들이 도착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객중에 아래에 앉아 있던 자가 닭소리 낼 수가 잇어,(다른) 닭들이 다 우니

마침내 봉전을 꺼내어 (보이고) 나왔다.

나온지 한끼 밥먹는 시간 쯤에 과연 진군사가 쫒아 함고관에 이르니

이미 맹상군은 탈출한 뒤여서  마침내 돌아갔다.

 

* 傳: 1) 역참 2) 말

* 馳傳(치전): 말을 달리게 하다 (傳: 역의 車馬)

* 如(여): 같다...쯤에


 

 

始孟嘗君列此二人於賓客하니 賓客盡羞之러니,

及孟嘗君有秦難에 卒此二人拔之하니 自是之後로 客皆服이러라.

 

처음에 맹상군은 이두 사람을 빈객중에 넣었을 때 빈개들이  부끄러워하였는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큰 어려움을 맞아 마침내 이 두사람이 그를  뽑아 내었으니(구출하니)

이때 부터 빈객이 모두 탄복하였다.


 

孟嘗君過趙할새 趙平原君客之러니 趙人聞孟嘗君賢하고 出觀之라가 皆笑曰始以薛公爲魁然也러니,

今視之하니 乃眇小丈夫耳로다. 孟嘗君聞之怒하야대 客與俱者下斫擊殺數百人하고 遂滅一縣以去하니라.

 

맹상군이 조나라를 지날 적에 조나라 평원군이 그를 대접하였는데

조나라 사람들이 맹상군이 현명한 것을 알고 나와서 보다가 모두 비웃으며 말하길

"처음엔 설공이 체격이 뛰어나고 장대한 줄 알았으는데 지금 보니 왜소한 소장부로구나"

하였다. 맹상군이 이를 듣고 노하니 객 중에 (수레에) 함께 한 자가

수레에서 내려 수백인을 베어 쳐서 죽이고  마침내 한개 현을 몰살시키고 떠났다.

 

* 魁然(괴연): 뛰어나고 장대한 모양   (魁: 으뜸. 크다. 북두성 첫째 별)

* 眇(묘): 작다.

* 斫: 쪼갤 작, 찍을 작.


 

 

齊湣王不自得以其遣孟嘗君이라 孟嘗君至則以爲齊相任政하니

孟嘗君怨秦하야 將以齊로 爲韓魏로攻楚하고因與韓魏로攻秦하여 而借兵食於西周하야대,

 

제민왕이 맹상군을 보낸던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덕을 잃게 된지라 맹상군이 돌아오니

제나라 재상으로 삼아 정치를 맡기었고 맹상군이 진을 원망하여

장차 제나라 (군사)로써 한,위를 위하여(도와서) 초를 공격하고자 하고

한,위와 더불어 진을 공격하려고 서주에서 군사와 군량을 빌리려 하는데 

 

* 得: 德으로 해석 (音相似意)


 

 

蘇代爲西周하야 謂曰君以齊로 爲韓魏攻楚하야 九年에 取宛葉以北하야 以彊韓魏하고

今復攻秦하야 以益之하니, 韓魏南無楚憂하고 西無秦患이면 則齊危矣라. 韓魏必輕齊畏秦이니 臣爲君危之하노라.

 

소대가 서주를 위하여 (맹상군에게) 말하길

"군께서 제나라 군사로써 한,위를 위하여(도와서) 초를 공격한지 9년인데

완섭 이북지방을 취하여 한,위를 강하게 하였고 지금 다시 진을 공격하여

그들을 더욱 보태주니 한,위는 남쪽으로 초나라의 근심이 없게 되고

서로는 진나라의 우환을 없게 하면 제나라가 위태로워 집니다.

한,위가 필히 제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진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니 신을 군을 위하여 이를 위태롭게 여깁니다.


 

 

君不如令敝邑으로 深合於秦而君無攻하며, 又無借兵食하고 君臨函谷而無攻하야

令敝邑以君之情으로 謂秦昭王曰 薛公必不破秦하야 以彊韓魏라.

其攻秦也는 欲王之令楚王으로 割東國하야 以與齊而秦出楚懷王하야 以爲和이니

 

군께서는 우리나라(서주)로 하여금 진나라와 굳게 연합하게 하고 공격하지 말도록 하시고

또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께서 함곡관에 임하여 공격하지 말고 우리나라로 하여금

군의 뜻대로 진소왕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십시요

"설공이 필히 진을 격파하여 한,위를 강하게 하지 않을 것이요.

진을 공격하려는 것은 (진나라 소왕)왕이 초왕으로 하여금

초나라 동쪽나라 땅를 잘라서 제나라에 주게하고 

진나라는 초회왕을 보내주고 강화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君令敝邑으로 以此惠秦이면 秦得無破而以東國自免也라. 秦必欲之요 楚王得出에 必德齊하리니,

齊得東國에 益彊而薛世世無患矣요 秦不大弱而,處三晉之西하니, 三晉必重齊하리라.

 

군은 서주로 하여금 이런 일로써 진나라에 은혜를 배풀면 진나라은 파됨이 없이(= 군대가 손해 보지 않고) 

동국으로 스스로 (전쟁을)면할 것입니다.

진을 필히 그렇게 하고자 할 것이니 초왕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필히 제나라는 덕있다고 생각할 것이니 제나라가 동쪽의 나라를 얻으면 더욱 강해질 것이고

설은 대대로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는 크게 약해짐 없이 삼진의 서쪽에 쳐하게 되니 삼진은 필히 제나라를 중히 여길 것입니다.

 

* 三晉: 한,위,조


 

 

薛公曰善타. 因令韓魏賀秦하고 使三國無攻而不借兵食於西周矣러라  

是時에 楚懷王入秦하니 秦留之라 故欲必出之로되 秦不果出楚懷王하니라.

 

설공이 좋다 하였다. 그리하여 한,위로 하여금 진과 강화(수교)를 맺게 하고

세나라가 서로 공격하지 않게 하고 서주에서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았다.

이때에 초회왕이 진에 들어가니 진이 그를 억류하였다. 고로 그를 나오게 하려고 하였으나 

진나라가 끝내 초회왕을 내보내지 않았다.

 

* 賀(하): 하례하다. 강화하다. 사귀다

 

 

 

 

孟嘗君相齊에 其舍人魏子爲孟嘗君收邑入할새 三反而不致一入이어늘 孟嘗君問之하야대

對曰有賢者일새 竊假與之라 以故不致入이러라. 孟嘗君怒而退魏子하니라.

 

맹상군이 제나라에서 재상이 되니 사인 위자가 맹상군을 위하여 읍의 수입을 거두어 드리는데

3번 갔다와도 한번도 걷어오지 못하므로 맹상군이 물으니 대답하길  현자가 있어 삼가 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걷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맹상군이 노하여 위자를 퇴출시켜 버렸다. 

 

* 致(치): =成

* 假與(가여): 빌려주다

 

 

 

 

居數年에 人或毁孟嘗君於齊湣王曰孟嘗君將爲亂이러니

及田甲劫湣王에 湣王意疑孟嘗君하니 孟嘗君乃奔이라. 魏子所與粟賢者聞之하고

乃上書言孟嘗君不作亂이라 請以身爲盟이라하고, 遂自剄宮門하야 以明孟嘗君하야대,

 

수년뒤 혹자가 제민왕에게 맹상군을 헐뜯어 말하길 맹상군이 장차 난을 일으키려 한다고 하고

또 전갑이 민왕을 겁을 주니 민왕이 맹상군을 의심하자 맹상군이 곧 도망쳤다.

위자가 곡식을 주었던 현자가 이르 듣고 곧 글을 올려 말하길

맹상군은 난을 일으키지 않으니 제 몸으로 약속을 청하겠다 하며

곧 궁문에서 목을 찔러 죽어 맹상군을 (죄 없음을)밝히니


 

 

湣王乃驚하야, 而蹤跡驗問하니, 孟嘗君果無反謀라 乃復召孟嘗君하야대

孟嘗君因謝病歸老於薛이어늘 湣王許之하다.

 

민왕이 놀라  행적을 조사하여 보니 맹상군이 과연 모반한 바가 없는지라

곧 다시 맹상군을 불렀는데 맹상군은 병으로 사직하고 설땅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내고자 하니 민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其後에 秦亡將呂禮相齊하야 欲困蘇代어늘 代乃謂孟嘗君曰周最於齊에 至厚也라.

而齊王逐之而聽親弗하고, 相呂禮者는 欲取秦也라.

 

그 후에 진나라에서 도망온 장수 여례가 제에서 재상이 되어 소대를 곤궁에 빠뜨리고자 하니

소대가 곧 맹상군에게 말하길 "주최는 제나라에서 지극히 후하게 대우 받았는데

제왕이 그를 쫒아버리고 친불 말을 듣고 여례를 재상시킨 것은 진나라를 취하고자(관계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 周最: 여례 전임 재상


 

 

齊秦合則親弗與呂禮重矣라 有用이면 齊秦必輕君이니 君不如急北兵趨趙하야 以和秦魏하고,

收周最하야 以厚行하고 且反齊王之信하며 又禁天下之變이니, 齊無秦則天下集齊요

親弗必走하리니, 則齊王孰與爲其國也이리오.

 

제와 진이 연합하면 친불과 여례가 크게 쓰여질 것이고 

(제나라에서)그들을 쓰면 제,진은 군을 가벼이 대할 것이니

군은 급히 북으로 병사를 보내어 조나라에 달려가 치게하고 진,위가 화친하게하고 주최를 거두어서

후하게 대우하고 제왕의 신임을 회복하고 천하의 변화를 막으십시요." 하였다.

제나라가 진나라와 관계 맺지 않으면 천하는 제나라로 모일 것이고  친불은 반드시 도망하게 될 것이니

그러면 제왕은 누구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하였다.

 

* 爲國 : 나라를 다스리다


 

 

 

於是에 孟嘗君從其計而呂禮嫉害於孟嘗君이어늘 孟嘗君懼하야

乃遺秦相穰侯魏冉書曰 吾聞秦欲以呂禮收齊하니 齊는 天下之 彊國也라 子必輕矣리라.

 

이에 맹상군이 그의 계책을 따르니 여례가 맹상군을 질투하고 해치려하니

맹상군이 두려워 마침내 진 재상 양후 위염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길 "제가 듣기에 진은 여례로써(를 이용하여) 제나라를 거두고자(관계를 맺고자) 하니

제는 천하의 강국이니 그대를 필히 가벼히 여길 것이다.


 

 

齊秦相取하야 以臨三晉이면 呂禮必幷相矣리니

是는 子通齊하야 以重呂禮也오 若齊免於天下之兵이면 其讎子必深矣리라.

 

제와 진이 서로 관계를 맺어 삼진에 임하면(취하려 하면) 여례가 필히 재상을 겸하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는 제나라와 통하여 여례를 중히 여기게 하는 것이고

만약 제나라가 천하의 전쟁을 면한다면, (제나라는) 그대를 원수로 여기는 것이 깊게 될 것입니다.

 

 

 

 

子不如勸秦王伐齊라 齊破라도 吾請以所得으로 封子요,

齊破면 秦畏晉之彊하야 秦必重子以取晉이요 晉國弊於齊而畏秦이면, 晉必重子以取秦이니,

 

그대는 진왕에게 제를 칠 것을 권하시고 제나라가 깨지면 내가 얻은 것으로 그대를 봉해줄 것이요,

제나라가 깨지면 秦은 과연 晉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秦은 그대를 중히 여겨 晉을 취할 것(=관계를 맻을 것)이며,

晉나라가 제나라에 의해 피폐해져서 秦을 두렵게 여길 것이니

晉은 필히 그대를 중하게 여겨 秦을 취할 것이니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니)


 

 

 

是는 子破齊以爲功하며 挾晉以爲重이라.

是는 子破齊定封하며 秦晉交重子요 若齊不破면 呂禮復用하고, 子必大窮하리라.

 

이는 그대가 제나라를 깨뜨려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고 晉을 옆에 끼고 중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그대가 제를 깨뜨려 봉읍을 정해 받게 되는 것이며

秦과 晉이 서로 그대를 중히 여길 것이요,

만약 제가 깨지지 않는다면 여례가 다시 쓰여지고 그대는 필히 크게 궁하게 될 것이다.


 

 

 

於是에 穰侯言於秦昭王하야 伐齊而呂禮亡하니라.

後에 齊湣王滅宋益驕하야 欲去孟嘗君하야대 孟嘗君恐하야 乃如魏하니,

 

이리하여 양후가 진소왕에게 말하여 제를 치니 여례는 도망하였다.

후에 제민왕이 송을 멸하여 더욱 교만해져서 맹상군을 제거하고자 하니  맹상군이 두려워 곧 위나라로 가니

 

 

 

 

魏昭王以爲相하야 西合於秦趙與燕하야 共伐破齊하니 齊湣王亡在莒하야 遂死焉하니라.

 

위소왕이 재상으로 삼아 서쪽으로 진,조,와 연합하고

연과 함께 제를 쳐 깨뜨리니 제민왕이 도망쳐 지땅에 머물다 마침내 죽었다.

 

 

 

齊襄王立而孟嘗君中立하야 爲諸侯無所屬이러니

齊襄王新立에 畏孟嘗君하야 與連和復親이러니 薛公文卒에 諡爲孟嘗君하다.

諸子爭立而齊魏共滅薛하니 孟嘗絶嗣無後也하니라.

 

제양왕이 즉위하자 맹상군이 중립이 되어 제후를 위하여 소속됨이 없었다.

제양왕이 새로 즉위하여 맹상군을 두려워하여 연합하여 다시 친하니

설공문이 죽고 시호를 맹상군이라 하였다. 여러 아들들이 자리를 다투자 제,위가 함께 설을 멸망시키니

맹상군 후손이 끊기게 되었다.


 

 

初에 馮驩聞孟嘗君好客하고 躡屩而見之하야대 孟嘗君曰先生遠辱하니

何以敎文也오 馮驩曰聞君好士하고, 以貧身歸於君이러라.

 

처음에 풍환이  맹상군이 객을 좋아한다는 것을  듣고 멀리서 와서 그를 만나니

맹상군이 말하길 "선생이 멀리 오시느라 욕을 보셨는데 제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하십니까?"

하니 풍환이 "군이 선비를 좋아한다는 것을 듣고 아무 것도 없는 몸으로 군에게 귀의 하려하오"하였다. 

 

*馮驩(풍환): 인명

* (섭갹): 멀리가다(= 遠行) /躡: 밟다. 이르다  / : 짚신.

 

 

 

 

孟嘗君置傳舍十日이러니 孟嘗君問傳舍長曰 客何所爲오 答曰馮先生甚貧하야 猶有一劒耳오

又蒯緱하야 彈其劒而歌曰 長鋏아 歸來乎인대 食無魚이로다하더라.

 

맹상군이 전사에 둔지 10일후에 전사장에게 물어

"객이 무엇을 하오"하니 전사장이 대답하길

"풍선생은 가난하여 칼 한자루를 가지고 있을 뿐인데

칼자루를 괴라는 풀로 칼자루를 싸매고는 칼을 두두리며 노래하길

긴 칼아 돌아가자 밥 먹는데 생선이 없구나 합니다"고 하였다

 

* 傳舍: 식객들이 머무는 집

* 蒯(괴): 풀 이름,

* 緱(구):  칼 자루를 싸다.

* 鋏(협): 칼.


 

 

 

孟嘗君遷之幸舍하니 食有魚矣라 五日에 又問傳舍長하야대

答曰客復彈劒而歌曰長鋏아 歸來乎인데 出無輿이로다하더라.

 

맹상군이 그를 행사로 옮겨 주니 밥에 생선이 있었다. 5일 뒤 또 전사장에게 물으니 답하길

" 객이 또 칼을 두두리며 노래하는데 긴 칼아 돌아가자  외출하는데 가마가 없구나 합니다" 라고 하였다.

 

* 幸舍(행사): 중등의 객이 묵는 곳


 

 

 

 

孟嘗君遷之代舍하니, 出入에 乘輿車矣라 五日에 孟嘗君復問傳舍長하야대

舍長이 答曰先生又嘗彈劒而歌曰長鋏아 歸來乎인데, 無以爲家하더이다.

 

맹상군이 그를 대사로 옮겨주니 들고 나는데 수레를 탈 수 있었다.

5일후에 맹상군이 다시 물으니 전사장이 대답하길

"선생이 또 칼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데 긴 칼아 돌아가자 집이 없구나 합니다" 하였다.

 

* 代舍: 상등의 객이 묵던 집


 

 

 

孟嘗君不悅하니 居朞年에 馮驩無所言이러니 孟嘗君時相齊하야 封萬戶於薛하니

其食客三千人에 邑入이 不足以奉客일새 使人出錢於薛하야 歲餘不入하고 貸錢者多不能與其息하야 客奉 將不給이어늘,

 

맹상군이 기분이 나빴는데 1년 동안 풍환은 말하는 바가 없었다.

맹상군이 당시 제나라 재상을 하고 있어 설땅에 만호를 봉받았지만 식객이 3천명이라

봉읍의 수입이 객을 받들기에 부족하여 사람을 시켜 설땅에 돈을 빌려 주었는데

일년이 넘도록 들어 오지 않고 돈을 빌려가 그 이자를 내지 못하는 자가 많아서 객을 모시는데 장차 부족하거늘

 

* 時: 당시

* 給(급)= 足

 

 

 

 

孟嘗君憂之하야 問左右호대 何人可使收債於薛者요

傳舍長曰代舍客馮公形容狀貌 甚辯하고 長者라 無他伎能하니 宜可令收債이니다.

 

맹상군이 걱정하여 좌우에 묻길 '설땅에서 채무를 걷어올 수 있게 하는 자가 누구요?"하니

전사장이 말하길 "대사에 머물고 있는 객 풍공이 체격과 용모가 좋고 말을 잘하고 나이도 많은데

다른 제주는 없으니 마땅히 돈을 걷어 오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하였다.

 

*伎(기): 재간. 재주

 

 

 

 

孟嘗君乃進馮驩而請之曰 賓客不知文不肖하고 幸臨文者三千餘人일새 邑入이 不足以奉賓客이라

故로 出息錢於薛이러니 薛歲不入하고 民頗不與其息하야 今客食이 恐不給하러니, 願先生은 責之어다.

 

맹상군이 곧 풍한에게 나가 청하길 "빈객들이 제가 불초한 것을 모르고

다행히 제에게 온 사람이 3천여인인데 봉읍의 수입이 빈객을 모시는데 부족합니다.

그래서 설땅에 돈을 빌려주었는데 설땅의 수입은 들어오지 않고

백성들이 자못 그 이자를 내지 않으니

지금 객들의 식량이 부족할 까 두려우니 청컨데 선생이 이일을 맡아주시요"하니


 

 

馮驩曰諾다 辭行至薛하야 召取孟嘗君錢者하야 皆會하니 得息錢十萬이라

乃多釀酒하며 買肥牛하고 召諸取錢者하니 能與息者 야 皆來하고, 不能與息者도 亦來라.

 

풍환이 승락하고 사직인사를 하고 길을 떠나 설땅으로 갔는데

맹상군의 돈을 빌려간 자를 불러 모두 모이게하여 이자 10만량을 받았다.

곧 술을 많이 빚고 살찐 소를 사고 돈 빌려간 자를 모두 불렀는데

이자를 낼 수 있는 사람들도 오게하고 이자를 못내는 자도 역시 오게 하였다.


 

 

皆持取錢之券書하야 合之하고齊爲會하고 日殺牛置酒하야 酒酣에

乃持券如前合之하야 能與息者는 與爲期하고 貧不能與息者는 取其券而燒之曰,

 

모두 돈 빌려간 증서를 가져오니 합해보고(맞추어 보고), 모두 모이게 하고

매일 소를 잡고 술을 배풀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곧 증서를 가지고

전처럼 합해보고(대조해 보고)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사람은 기한을 정해 주고

가난하여 이자를 못 갚는 사람은 그 증서를 가져와 불사르며 말하길

 

* 合: 합하다. 대조해 보다.

* 齊: 모두. 일제히


 

 

 

孟嘗君所以貸錢者는  爲民之無者以爲本業也요 所以求息者는

爲無以奉客也라 令富給者는 以要期하고, 貧窮者는 燔券書以捐

之하니 諸君彊飮食이어다. 有君如此하니 豈可負哉아 坐者皆起

再拜러라.

 

"맹상군이 돈을 빌려준 이유는 백성중에 없는 자(가난한)사람이 본업에 힘쓰도록 하기 위함이요,

이자를 받는 것은 객들을 봉양할 수 없기 때문이요. 지금 부유하고 여유있는 자는 날짜를 기약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는 그 증서를 불살라 버리니 여러분들은 맘껏 먹고 마시십시요.

맹상군이 이와 같으니 어찌 그에게 등을 돌리겠소"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재배하였다. 

 

* 燔;구울 번.


 

 

 

孟嘗君聞馮驩燒券書하고 怒而使使하야 召驩하야대 驩至어늘

孟嘗君曰文食客三千人이라 故로 貸錢於薛이러니 文封邑少하고 而民尙多하야 不以時與其息이라.

 

맹상군이 풍환이 증서를 불살랐다는 것을 듣고 노하여 사람을 시켜 풍환을 불러 풍환이 오니

맹상군이 "저의 식객이 3천명이래서 설땅에 돈을 빌려주었고

제가 봉해 받은 읍은 작고 사람들은 오히려 많으니 때에 맞추어 이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時: 때를 맞추어


 

 

 

客食恐不足일새 故請先生하야 收責之러니  聞先生得錢하야 卽以多具牛酒하고

而燒券書라하니, 何오, 馮驩曰然하다.

 

객의 식량이 부족함이 걱정되어 선생께 청하여 걷어오도록 책임을 맡겼는데 들으니

선생이 돈을 받아 소와 술을 많이 준비하고 증서를 불살랐다고 하니 무엇 때문이요"하니 풍환이 말하길 그렇습니다.



 

不多具牛酒이면 卽不能畢會하야 無以知其有餘不足이오

有餘者는 爲要期어니와 不足者는 雖守而責之十年이라도 息愈多이니 急이면 卽以逃亡自捐之요,

 

소와 술을 많이 준비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누가 ) 여유가 있는지 부족한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있는 자에게는 기일을 정해 주었고

부족한 자들은 비록 10년을 지키고 책임을 지워도 오히려 이자는 많아지니

급하면 도망쳐 스스로 그 증서를 버릴 것입니다.

 

 

 

 

若急하야 終無以償이면 上則爲君好利하야 不愛士民이요,

下則有離上抵負之名이니 非所以厲士民彰君聲也라.

 

만약 급하게 하여(독촉) 마침내 받지 못한다면 못한다면

위에서는 군이 이익을 좋아하고 사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고,

아래 백성들은 상전을 버리고 배신했다는 이름을 얻을 것이니

사민들을 (생업에) 힘쓰게 하고 군의 명성을 빛나게 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 厲= 勵(려): 힘쓰다

 

 

 

 

焚無用虛債之券하야 捐不可得之虛計하고 令薛民으로 親君而彰君之善聲也이니

君有何疑焉이리오. 孟嘗君乃拊手而謝之러라.

 

쓸모없는 헛된 증서는 불사르고 얻을 수 없는 헛된 계책을 버리고

설땅 백성들로 하여금 군과 친하게 하고 군의 좋은 명성을 빛나게 하는 것인데

군은 무슨 의심을 하십니까?"하였다. 맹상군은 곧 손을 부여 잡고 사례하였다.

 

* 拊(부): 어루만지다


 

 

齊王惑於秦楚之毁하야 以爲孟嘗君名高其主하고 而擅齊國之權이라하여 遂廢孟嘗君하니

諸客見孟嘗君廢하고 皆去하니 馮驩曰借臣車一乘하여 可以入秦者면 必令君重於國하고, 而奉邑益廣이 可乎아.

 

제왕이 진과 초가 (맹상군을 )헐뜯는데 현혹되어 맹상군의 이름이 임금보다 높아

제나라 권세를 제멋대로 한다고 여겨 마침내 맹상군을 폐위하니

여러 객들이 맹상군이 폐위된 것을 보고 모두 떠나니

풍환이 말하길 "신에게 수레 1승을 빌려 주시어 진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시면

반드시 군이 이나라에서 중요되게 하고 봉읍이 더욱 넓어지도록 하겠으니 괜찮겠습니까?"하였다.

 

*擅(천): 멋대로 하다 


 

 

孟嘗君乃約車幣而遣之하야대 馮驩乃西說秦王曰天下之游士馮軾結靷하야

西入秦者 無不欲彊秦而弱齊오 馮軾結靷하야 東入齊者 無不欲彊齊而弱秦하니 此雄雌之國也라.

勢不兩立이니爲雄이면 雄者得天下矣리이다.

 

맹상군이 곧 수레와 폐백을 갖추어 그를 보냈는데

풍환이 곧 서쪽으로 가 진왕에게 유세하길 "천하의 유사들이 수레를 달려 서쪽으로 와 진에 들어온 자들 중에

진을 강하게 하고 제를 약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 자가 없고,

수레를 달려 동쪽으러 가 제에 들어간 자 중에는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을 약하게 하지 않으려는 자가 없으니

이는 (두나라가) 자웅을 겨루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형세를 보면 둥이 서서 웅(수컷)이 될 없으니 웅이 되면 웅자는 천하를 얻을 것 입니다"하였다.

 

* 約: 갖추다

* 馮軾結靷(빙식결인): 마차를 달려서 가다.

  馮: 기댈빙 軾:수레앞턱 가로나무식 結: 묶을 결   靷:우마차의 가슴  걸이 인.

 

 

 

 

秦王跽而問之曰何以使秦으로 無爲雌而可오 馮驩曰王亦知齊之廢孟嘗君乎아.

秦王曰 聞之러라. 馮驩曰 使齊 重於天下者는 孟嘗君也어늘, 今齊王以毁廢之하니 其心怨하야 必背齊니,

 

진왕이 무릎을 꿇고 묻길 "어찌 하면 진나라가 자(암컷)이 되지 않을 수 있겠소?"하니

풍환이 말하길 "왕께서도 역시 제나라가 맹상군을 폐한 것을 알고 계시죠?"하니 진왕이 "들었소"하였다.

풍환이 말하길 "제나라를 천하에 중하게 만든 것은 맹상군인데

지금 제왕이 그를 폐하였으니 그의 마음이 제나라를 원망하고 배반할 것이니

 

* 何以.....可? : 어찌하면.....가하겠는가?


 

 

 

背齊入秦이면, 則齊國之情,人事之誠을 盡委之秦하리니, 齊地를 可得也라. 豈直爲雄也이리오.

君急使使載幣하야 陰迎孟嘗君하야 不可失時也이어다.

如有齊覺悟하야 復用孟嘗君이면 則雌雄之所在를 未可知也이리이다.

 

 제를 배반하고 진으로 들어 오면 제나라의 실정과 인사의 상황을 진나라에 다 얘기할 것이니

제나라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어찌 단지 웅만 되겠습니까?

임금님이 곧 사신을 보내어 폐백을 실고 몰래 맹상군을 맞이하여 때를 놓치면 안됩니다.

만약 제나라가 깨닿고 다시 맹상군을 쓰면 자웅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없게 됩니다"하였다.

 

* 情: 실정

* 誠: 참모습


 

 

秦王大悅하야 乃遣車十乘과 黃金百鎰하야 以迎孟嘗君하야대

馮驩辭以先行하야 至齊說齊王曰 天下之游士馮軾結靷하야 東入齊者는 無不欲彊齊而弱秦者요

 

진왕이 크게 기뻐하여 곧 수레 10승과 황금 100일을 보내어 맹상군을 맞이하게 하였는데,

풍황이 사직하고 먼저 와 제에 이르러 제왕에게 유세하길

"천하의 유사들이 말을 달려 동으로 제나라에 온 사람중에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르 약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 자가 없고

 

 

 

馮軾結靷하야 西入秦者는 無不欲彊秦而弱齊者라

夫秦齊는 雄雌之國이라, 秦彊則齊弱矣니 此勢不兩雄이라.

 

마차를 달려 서쪽으로 진으로 간 자중에 진을 강하게 하고 제를 약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진과 제는 자웅의 국이라. 진이 강하면 제가 약해지니 이것은 둘 다 웅이 될 수 없는 형세입니다.


 

 

今臣竊聞秦遣使車十乘하고 載黃金百鎰하야 以迎孟嘗君이너늘

孟嘗君不西則已어니도 西入相秦이면 則天下歸之하야 秦爲雄而齊爲雌하리니 雌則臨菑,卽墨危矣라.

 

신이 삼가 들으니 진나라가 수레 10승을 보내 황금 100일을 실고 맹상군을 맞이 하고자 한다하니

맹상군이 서쪽으로 가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서쪽으로 들어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면

곧 천하가 진나라로 갈 것이니 진이 웅이 되고 제가 자가 될 것이니 이는 곧 임치,즉묵이 위패로워집니다.


 

 

王何不先秦使之未到하야 復孟嘗君而益與之邑하야 以謝之요, 孟嘗君必喜而受之하리니,

秦雖彊國이나 豈可以請人相而迎之哉아. 折秦之謀而折其霸彊之略하리이다.

 

왕은 어찌 진나라 사신이 오기 전에 먼제 맹상군을 복직 시키고 식읍을 더 주지 않으십니까?

그것으로 사례하면 맹상군이 필히 기뻐하고 받을 것이니,

비록 진나라가 강국이라 하나 어찌 다른 나라 재상을 요청하여 맞이하겠습니까?

진의 모략과 패자가 되고 강하게 되는 지략을 끊어버리십시요"하였다.


 

 

齊王曰善타하고, 乃使人至境하야 候秦使이러니 秦使車適入齊境이어늘

使還馳告之하야대, 王召孟嘗君而復其相位하고, 而與其故邑之地하고, 又益以千戶하니,

秦之使者聞孟嘗君復相齊하고 還車而去矣러라.

 

제왕이 좋다하고 곧 사람을 국경으로 보내 진나라 사신을 살피니

진나라 사신의 수레가 마침 제나라 국경으로 들어오니 그 사람이 돌아와 보고 하니

왕의 맹상군을 불러 재상잘에 복직시키고 옛 식읍의 땅을 주고 다시 천호를 보태어 주니

진나라 사신이 맹상군이 다시 제나라 재상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 수레를 돌려 떠났다.

 

*候(후): 염탐하다. 기다리다


 

 

 

自齊王毁廢孟嘗君으로 諸客皆去러니, 後召以復之하니 馮驩迎之한데

未到에 孟嘗君太息歎曰 文常好客하야 遇客에 無所敢失하야 食客三千有餘人은 先生의 所知也라.

 

제왕이 맹상군을 폐한 이래로 모든 식객이 떠나갔는데 다시 불러 돌아오게하여,

풍환이 그들(빈객)을 맞이하는데 (그들이)아직 도착하기 전에

맹상군이 크게 탄식하여 말하길 "나는 항상 객을 좋아하여 객을 대우하는데

감히 잘못한 바가 없어 식객이 3천여명인것은 선생도 아는 바라,

 

 

 

 

客見文의 一日廢하고 皆背文而去하야 莫顧文者이러니

今賴先生하야 得復其位하니 客亦有何面目으로 復見文乎이리오.

如復見文者면 必唾其面而大辱之하리라. 馮驩結轡下拜하야대, 孟嘗君下車接之曰,

 

 

내가 하루아침에 쫒겨나는 것을 식객들이 보고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 나를 돌아 보는 자가 없으니

지금 선생 덕분에 복직하였으니 객 또한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볼 것인가?

만약 나를 다시 본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고 크게 욕을 보이리라"하엿다.

풍환이 고삐를 매고 (수레에서)내려와 절을 하니 맹상군이 수레에서 내려와 맞으며 말하길

 

* 賴(뢰): 믿다. 도움을 입다.

* 轡;고삐 비.


 

 

 

先生爲客謝乎아, 馮驩曰非爲客謝也라. 爲君之言失이라

夫物有必至하고 事有固然하니 君知之乎아. 孟嘗君曰愚하야 不知所謂也이러라.

 

"선생이 객들을 위하여 사과하려구요?"하니

풍환이 말하길

"객들을 위하여 사과하려는 것이 아니고 군의 말이 잘못(실수)되어서 입니다.

사물에는 반드시 이르는 것이 잇고 일에는 진실로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는데 군께서는 알고 계십니까?'하니

맹상군이 답하길 "나는 어리석어 말하는 바를 모르겠소"하였다.

 

* 必至: 반드시 이르는 곳(그렇게 되는 결과)

* 固然:진실로 그러한 것(그렇게 되는 도리)


 

 

 

曰生者必有死는 物之必至也오, 富貴에 多士요 貧賤이면 寡友는 事之固然也라

君獨不見夫朝趨市者乎아 明旦에는  側肩하야 爭門而入하고 日暮之後에는 過市朝者가 掉臂而不顧하니,

非好朝而惡暮라 所期物亡(무)其中이라,

 

"살아 있는 자는 반드시 죽는 것은 사물이 반드시 이르는 것이요,

부귀하면 선비가 많고 빈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일이 진실로 그렇게 되는 바인 것입니다.

군만이 아침에 시장에 달려 가는 자들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아침에는 어깨를 옆으로 하고 문을 다투어 들어가고 해진 후에는

시장을 지나가는 자가 손을 늘어 뜨려가면서 쳐다 보지도 않는 것은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기대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 明旦(명단): 내일 아침 또는 아침

* 市朝(시조): 시장

* 掉臂(도비):팔을 내려 뜨리고 흔들 흔들하며 걷는 한가한 모양.

* 亡: 망할 망. 없을 무


 

 

 

今君失位에 賓客皆去하니 不足以怨士로되 而徒絶賓客之路이니

願君 遇客如故이어다. 孟嘗君再拜曰敬從命矣하리니 聞先生之言하고 敢不奉敎焉가.

 

지금 군이 직위를 잃고 빈객이 모두 떠나간 것은 선비들을 원망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며

빈객들의(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어 버리는 것이니

원컨데 군께서는 옛날 처럼 객을 대우하여 주십시요"하였다.

맹상군이 재배하며 말하길

"삼가 그 명에 따르겠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어찌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太史公曰 吾嘗過薛하니 其俗이 閭里에 率多暴桀子弟하야 與鄒魯殊이너늘 問其故하니

曰孟嘗君招致天下任俠姦人하야 入薛中하니 蓋六萬餘家矣라 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라하니 名不虛矣로다.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일찌기 설땅을 지나는데 그 풍속이 마을에 대체로 거친 자제들이 많아 추와 노지방과 달라서 그 까닭을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과 간사한 자를 불러 모았으니 설땅에 들어온 사람이 대략 6만여 집이였다" 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객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였다.

 

* 率魯(노): 공자 지방(솔): 거느리다. 대체로

* 殊(수): 다르다

* 鄒(추): 맹자 지방

* 魯(노): 공자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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