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

관중․ [ 管·晏列傳 ]

다이달로스 2010. 3. 20. 16:48

 

  

관중(管仲 ?∼BC 645)        중국 제(齊)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이오(夷吾). 안후이성[安徽省(안휘성)] 출생.

제나라 희공(僖公)에게서 벼슬했으며, 희공이 죽은 후 희공의 둘째 아들 규(糾)를 왕위에 올리려다,

친구인 포숙아(鮑叔牙)가 희공의 막내아들 환공(桓公)을 추대하자 함께 그를 섬겼다.

관중과 포숙아의 평생의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여 오늘날까지 모범이 되고 있다.

고기·소금 등 자원을 이용하여 상공(商工)을 보호했고, 적절한 물가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상하의 권형(權衡)에 힘써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기틀을 세워 환공의 패업(覇業)을 크게 도왔다.                                                      

저서로 《관자(管子)》가 알려져있다.                                                                                                                                                               ********************************************************************************                                                                                                                                     

 

 

관중(管仲) 이오(夷吾)는 영상(潁上) 출신이다.

 

관중은 어릴 때부터 포숙아(鮑叔牙)와 어울려 지냈다.

포숙은 관중의 뛰어남을 알아주었다.

관중은 가난하여 포숙을 속이곤 하였지만 포숙은 속인 것을 따지지 않고 관중을 잘 대해 주었다.

 

세월이 흐른 뒤 포숙은 제(齊)나라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섬기고

관중은 소홀(召忽)과 함께 공자 규(糾)를 섬기게 되었다.

 

당시 제나라는 양공의 실정으로 나라가 어지러웠다.

양공의 이복동생 무지와 대부 연칭, 관지보 등이 반란을 일으켜 양공을 죽이고 무지가 스스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무지 역시 원한이 있는 자들에게 살해당했다.

 

결국 제나라의 왕위를 양공의 아들 소백과 규가 다투게 되었다.

둘째 아들인 규는 노나라로 도망가 있었고 셋째 소백은 거나라에 도망가 있던 차였다.

노나라에서는 규를 호송하여 제나라로 보내는 한편 관중에게 따로 병사를 주어

소백이 제나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관중은 화살을 쏘아 소백을 맞추었다.

관중은 사람을 시켜 이 일을 노나라에 보고하게 하였다.

노나라는 규를 호송하는 행군을 늦추어 6일만에 제나라에 도착하였다.

 

관중의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쇠장식을 맞혔다.

소백은 일부러 죽은 척하여 관중을 속이고 장막을 친 마차를 타고 먼저 제나라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취하고 있던 대부 고혜와 국의중이 소백을 맞아들여 왕으로 옹립하고

군대를 풀어 노나라 군대를 막아냈다. 소백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환공(桓公)이다.

 

그해 가을 제나라는 노나라와 간시에서 격돌하였는데 노나라 군대가 패해서 달아났다.

환공은 노나라 장공에게 통고하였다.

 

“규는 형제라 차마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겠으니 노나라에서 알아서 처리하라.

소홀과 관중은 내 원수이니 그 놈들을 내 손으로 죽여 젓갈을 담아야 직성이 풀리겠다.

놈들을 제나라로 보내라. 그러지 않으면 노나라를 공격하겠다.”

 

노나라에서는 규를 생독에서 죽였다. 소홀은 자살했으나 관중은 제나라로 가서 죽기를 원했다.

 

노나라 사람 시백(施伯)은 장공에게 관중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했다.

“제나라가 관중을 얻고자 하는 것은 원한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고 등용하기 위해서이옵니다.

관중이 제나라에 등용되면 노나라는 우환이 생기게 되옵니다. 관중을 죽여 시체로 보내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그러나 장공은 시백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래 환공은 관중을 죽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포숙이 환공에게 간하였다.

“왕께서 제나라에 만족하신다면 고혜와 저로 충분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왕께서 제후들의 패자(覇者)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시려면 관중 없이는 아니 되옵니다.

관중이 있는 나라는 강성하게 될 것이니, 그를 놓치면 아니 되옵니다.”

환공은 포숙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 정치를 맡겼다.

환공은 포숙이 예견한 대로 제후들의 패자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이 모두 관중의 계책 덕분이었다.

 

관중은 말했다.

“ 내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 포숙과 장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나는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 많다고 탓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사업을 벌이다가 실패해서 포숙을 힘들게 하였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일에는 잘 될 때와 잘못 될 때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이나 벼슬을 하다가 모두 쫓겨났다. 하지만 포숙은 나에게 모자라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모두 패해 달아났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왕위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소홀은 자결을 했지만 나는 붙잡힌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한다는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고 관중의 아랫자리에서 관중을 보좌하였다.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자 바다에 접해 있다는 제나라의 잇점을 살려

다른 나라와 교역을 통해 재물을 쌓아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튼튼하게 하고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하였다.

 

관중은 말했다.

창고에 물자가 쌓여 있어야 예절을 알며[ (창고실즉지예절)],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의식족즉지)],

 

왕이 바르게 정치를 행하면 온 백성이 화목하게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인 예의염치가 사라지면 나라는 망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명을 내리면 백성들도 명에 순순히 따르게 된다.”

 

제나라에서 시행한 정책이나 법은 백성들이 따라하기 쉬웠다.

관중은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들어주고 싫어하는 것은 없앴다.

 

관중은 재앙이 될 수 있는 일도 잘 이용하여 복이 되게 하였고, 실패하게 될 일도 성공하게 만들었다.

또한 일의 경중을 잘 헤아리고 득실을 따지는데 신중하였다.

 

환공이 노나라를 쳤다. 노나라 장공이 땅을 바치며 화평을 청하자 환공은 허락하였다.

환공과 장공과 가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노나라 장공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려고 할 때

노나라 장군 조말(曹沫)이 단 위로 올라갔다. 조말은 제나라 군대와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패하였다. 조

말은 비수로 환공을 협박하였다. 환공의 신하들은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환공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관중이 조말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하오. 그런데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범하는 정도가 지나치오.

지금 제나라의 국경이 노나라의 도읍에까지 육박하고 있으니 환공께서 이 점을 고려해 주시기 바라오.”

 

환공은 그 말을 듣고 노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환공의 말이 끝나자 조말은 비수를 던져 버리고 단에서 내려와 다른 신하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환공은 노나라 땅을 돌려주지 않을뿐더러 조말을 죽이려고 하였다.

 

관중이 말했다.

“비록 협박을 당해 승낙하였다고 하더라도 약속을 저버리고 조말을 죽인다면

제후들은 왕께서 신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로써 천하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돌려주시는 것이 좋사옵니다.”

 

환공은 관중의 말에 따라 노나라의 땅을 돌려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제후들은 더욱 제나라에 의지하려고 하였다.

여기서 ‘얻는 것 보다 주는 게 나을 때가 있다는 걸 아는 게 정치의 비책’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를 호령하게 되자 환공은 관중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점점 교만해졌다.

환공은 주나라를 업신여겼고 제후들을 깔보았다.

 

관중이 병이 나자 환공이 물었다.

“신하들 중에 그대를 대신하여 재상을 할 만한 인물이 누구인가?”

“왕보다 신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사옵니다.”

“역아는 어떤가?”

“제 아들을 죽여 삶은 국을 왕께 바쳐 충성하였으니 인정에 어긋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

“개방은 어떠한가?”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서 왕께 충성하니 인정에 어긋나옵니다. 가까이 두기 어렵사옵니다.”

“그럼 수도는 어떠한가?”

“제 생식기를 잘라 왕께 충성하니 인정에 어긋나옵니다. 아낄만 하지 않사옵니다.”

 

관중이 죽고 나자 환공은 관중의 말을 따르지 않고 이 세 사람을 중용하였다. 이 세 사람은 정권을 휘두르게 되었다.

 

관중의 재산은 왕실의 재산에 버금갔고 세 집 살림을 하였으나 욕하는 제나라 사람이 없었다.

관중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나라는 관중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다른 제후국보다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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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후기 ^^

 

 

관중이 병에 걸려 자리에 드러눕자, 환공이 찾아오고
환공이 관중의 후계자로서 포숙아에게 재상을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을때

관중의 대답이 너무도 뜻밖으로
"안됩니다. 포숙아의 사람됨이 강직하고 괴퍅하고 사납습니다.

강직하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게 되며, 사나우면 아랫사람을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삼갈 줄을 모르니 패자(覇者)의 보좌로는 마땅치 않습니다." 

평생 포숙아의 도움을 받아 요즘의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재상 자리까지 올랐지만,

정작 기회가 되어 친구를 추천해야 할 입장이 되자 관중은 친구를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성격이 강직하고 괴퍅하고 사나우니 재상을 시키면 안된다고 막말까지 합니다. 

실제로 포숙아는 재상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포숙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역사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관중은 포숙아를 배신한 걸까요? 포숙아는 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잘 나갈 때는 친한 척 하다가 정작 친구의 힘이 필요할 때 외면한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했을까요? 

포숙아는 국가의 인사관리에서 적합한 자리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앉지 못하면,

결국 개인도 몸을 망치고 조직도 망가진다는 관중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또 관중이 죽은 후에 직선적인 성격의 자신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면 

간신들과 극도로 대립하게 될 것을 염려한 발언이라고 이해한 게 아닐까?


이 추측이 맞다면 결국 관중이 포숙아를 재상자리에 천거하지 않은 것은

친구의 미래를 생각한 우정 때문이 아닐까? 
관중 또한 포숙아가 자신의 뜻을 이해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관중과 포숙아는 '관대한 우정'을 넘어서 '위대한 우정'단계까지 올라갔다고 보여집니다. 

개인적인 우정과 국가의 인사관리를 현명하게 처리한 관중의 판단력도 위대하고, 그런 친구를 이해한 포숙아도 위대합니다.

관중이 죽은 후 환공은 관중이 중용하지 말라고 했던 3명의 간신배를 중용한 끝에 

비참한 말로를 보내고 국력도 쇠퇴하게 되지만, 정치에서 한 발 비껴난 포숙아의 가문은 

제나라의 명문 대가로서 10여대에 걸쳐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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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원문  

 

 

 

第二  管 晏列傳   (史記卷六十二)


<管仲><夷吾>者, <潁上>人也. 少時常與<鮑叔牙>游, <鮑叔>知其賢. <管仲>貧困, 常欺<鮑叔>, <鮑叔>終善遇之, 不以爲言. 已而<鮑叔>事<齊><公子小白>, <管仲>事<公子糾>. 及<小白>立爲<桓公>, <公子糾>死, <管仲>囚焉. <鮑叔>遂進<管仲>. <管仲>旣用, 任政於<齊>, <齊><桓公>以霸, 九合諸侯, 一匡天下, <管仲>之謀也.

<管仲>曰 : “吾始困時, 嘗與<鮑叔>賈, 分財利多自與, <鮑叔>不以我爲貪, 知我貧也. 吾嘗爲<鮑叔>謀事而更窮困, <鮑叔>不以我爲愚, 知時有利不利也. 吾嘗三仕三見逐於君, <鮑叔>不以我爲不肖, 知我不遭時也. 吾嘗三戰三走, <鮑叔>不以我爲怯, 知我有老母也, <公子糾>敗, <召忽>死之, 吾幽囚受辱, <鮑叔>不以我爲無恥, 知我不羞小節而恥功名不顯于天下也.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鮑叔>旣進<管仲>, 以身下之. 子孫世祿於<齊>, 有封邑者十餘世, 常爲名大夫. 天下不多<管仲>之賢而多<鮑叔>能知人也.

<管仲>旣任政相<齊>, 以區區之<齊>在海濱, 通貨積財, 富國彊兵, 與俗同好惡. 故其稱曰 : “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上服度則六親固. 四維不張, 國乃滅亡. 下令如流水之原, 令順民心.” 故論卑而易行. 俗之所欲, 因而予之 ; 俗之所否, 因而去之.

其爲政也, 善因禍而爲福, 轉敗而爲功. 貴輕重, 愼權衡. <桓公>實怒<少姬>, 南襲<蔡>, <管仲>因而伐<楚>, 責包茅不入貢於<周>室. <桓公>實北征山戎, 而<管仲>因而令<燕>修<召公>之政. 於<柯>之會, <桓公>欲背<曹沫>之約, <管仲>因而信之, 諸侯由是歸<齊>. 故曰 : “知與之爲取, 政之寶也.”

<管仲>富擬於公室, 有三歸·反坫, <齊>人不以爲侈. <管仲>卒, <齊國>遵其政, 常彊於諸侯. 後百餘年而有<晏子>焉.

<晏平仲><嬰>者, <萊>之<夷維>人也. 事<齊><靈公>·<莊公>·<景公>, 以節儉力行重於<齊>. 旣相<齊>, 食不重肉, 妾不衣帛. 其在朝, 君語及之, 卽危言 ; 語不及之, 卽危行. 國有道, 卽順命 ; 無道, 卽衡命. 以此三世顯名於諸侯.

<越石父>賢, 在縲紲中. <晏子>出, 遭之塗, 解左驂贖之, 載歸. 弗謝, 入閨. 久之, <越石父>請絶. <晏子>戄然, 攝衣冠謝曰 : “嬰雖不仁, 免子於戹, 何子求絶之速也?” <石父>曰 : “不然. 吾聞君子詘於不知己而信於知己者. 方吾在縲紲中, 彼不知我也. 夫子旣已感寤而贖我, 是知己 ; 知己而無禮, 固不如在縲紲之中.” <晏子>於是延入爲上客.

<晏子>爲<齊>相, 出, 其御之妻從門閒而闚其夫. 其夫爲相御, 擁大蓋, 策駟馬, 意氣揚揚, 甚自得也. 旣而歸, 其妻請去. 夫問其故. 妻曰 : “<晏子>長不滿六尺, 身相<齊國>, 名顯諸侯. 今者妾觀其出, 志念深矣, 常有以自下者. 今子長八尺, 乃爲人僕御, 然子之意自以爲足, 妾是以求去也.”其後夫自抑損. <晏子>怪而問之, 御以實對. <晏子>薦以爲大夫.

<太史公>曰 : 吾讀<管氏>《牧民》·《山高》·《乘馬》·《輕重》·《九府》, 及《晏子春秋》, 詳哉其言之也. 旣見其著書, 欲觀其行事, 故次其傳. 至其書, 世多有之, 是以不論, 論其軼事.

<管仲>世所謂賢臣, 然<孔子>小之. 豈以爲<周>道衰微, <桓公>旣賢, 而不勉之至王, 乃稱霸哉? 語曰“將順其美, 匡救其惡, 故上下能相親也”. 豈<管仲>之謂乎?

方<晏子>伏<莊公>尸哭之, 成禮然後去, 豈所謂“見義不爲無勇”者邪? 至其諫說, 犯君之顔, 此所謂“進思盡忠, 退思補過”者哉! 假令<晏子>而在, 余雖爲之執鞭, 所忻慕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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